같은 자리를 부르는 두 개의 이름
허리에 신경차단술을 하려고 자리를 짚다 보면, "여기 예전에 침 맞던 자리네요" 하는 말을 종종 듣습니다. 틀린 말이 아닙니다. 저는 의사 면허와 한의사 면허를 함께 가지고 있는데, 두 의학을 오가며 공부할수록 같은 자리를 서로 다른 이름으로 부르는 경우를 자주 만납니다. 이 글은 그 겹치는 지점에서 제가 허리 통증을 어떻게 보고, 어떻게 치료하는지 정리해 둔 것입니다.
협척혈과 후지내측지
한의학의 협척혈(夾脊穴)은 척추 가시돌기 바로 옆에 위아래로 줄지어 있는 혈자리입니다. 요즘 대체의학 쪽에서 SNEPI라고 부르는 척추 옆 주사도 제 눈에는 이 협척혈 자리와 겹쳐 보입니다. 그리고 후관절 통증을 확인하고 치료할 때 쓰는 후지내측지 신경차단술(MBB)의 바늘 자리는 허리의 요부팔혈 자리와 비슷합니다.
이걸 해부학으로 확인한 연구가 있습니다. 성인 척추 표본 30구의 허리 협척혈 자리에 침을 수직으로 넣고 해부해 봤더니, 가시돌기 아래 끝에서 1치 옆에 넣은 침은 약 36mm 깊이에서 후관절과 그 옆 섬유뼈관에 닿았고, 척수신경 뒤가지의 내측지(후지내측지)를 자극했습니다. 0.5치, 0.3치 자리에서도 침 끝이나 침 몸이 같은 신경의 줄기와 가지에 닿았고요. 저자들은 협척혈을 가시돌기 옆 0.3치에서 1치 사이의 구역으로 보자고 정리했습니다.

Jiang YX, Cheng B, Jiang SH, Lou XF. Characteristics of anatomical structures and clinical significance of lumbar Jiaji (EX-B 2) points. Zhongguo Zhen Jiu. 2012;32(2):139-42.
옛날 의원들이 손끝으로 찾던 자리와, 지금 우리가 영상으로 찾는 신경 자리가 같은 곳이라는 얘기입니다. 저는 이걸 두 의학이 같은 구조를 각자의 언어로 적어 온 결과라고 봅니다.

후관절이 만드는 다리 통증
후관절은 척추 뼈 뒤쪽에서 위아래 마디를 잇는 작은 관절입니다. 여기에 만성 염증이 생기면 통증이 허리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엉덩이, 허벅지 뒤와 옆, 사타구니 쪽까지 퍼져서 디스크로 인한 신경뿌리 통증과 헷갈리기 쉽습니다.
만성 허리 통증 환자 48명을 대상으로 후관절 71곳과 후지내측지 91곳을 하나씩 자극해서, 평소 아프던 통증이 어디서 재현되는지 기록한 연구가 있습니다. 통증은 허리, 엉덩이, 허벅지 뒤쪽, 사타구니로 퍼졌고, 마디마다 퍼지는 구역이 꽤 많이 겹쳤습니다. 그림 한 장으로 아픈 마디를 정할 수는 없다는 뜻이라, 저는 진찰과 영상, 그리고 차단에 대한 반응을 함께 봅니다.

Fukui S, Ohseto K, Shiotani M, Ohno K, Karasawa H, Naganuma Y. Distribution of referred pain from the lumbar zygapophyseal joints and dorsal rami. Clin J Pain. 1997;13(4):303-7.

진단의 바늘에서 치료의 바늘로
후지내측지 신경차단술은 원래 진단에 가까운 시술입니다. 국소마취제(리도카인)로 후관절에 가는 신경을 잠시 마비시켜 보고, 통증이 줄면 그 후관절이 원인이라고 판단합니다. 그다음에는 보통 고주파로 신경을 지지는 치료가 이어집니다.
저는 이 바늘을 조금 다르게 씁니다. 바늘 끝을 신경 자리에서 후관절 쪽으로 더 가깝게 두고, 마취제만이 아니라 PDRN 같은 조직 회복을 돕는 약을 함께 넣습니다. 신경을 잠깐 끄는 데서 끝내지 않고, 통증의 뿌리인 후관절의 만성 염증까지 다뤄 보려는 겁니다. 침 놓을 때처럼 필요한 자리에만 소량을 쓰고, 스테로이드 없이 3일 간격으로 반복합니다. 진료실에서는 이걸 신경약침이라고 부릅니다.

PDRN(폴리데옥시리보뉴클레오타이드)은 아데노신 A2A 수용체를 통해 염증 반응을 누그러뜨리고 조직 재생을 돕는 것으로 알려진 물질입니다. 스테로이드처럼 혈당을 올리거나 뼈를 약하게 할 걱정이 적어서, 여러 번 반복하는 치료에 쓰기 좋습니다.
다만 근거가 어디까지인지는 분명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PDRN을 후관절에 직접 넣어 효과를 확인한 임상 연구는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 가장 가까운 보고는, 당뇨 때문에 스테로이드를 쓰기 어려웠던 허리 디스크 환자에게 경추간공 경막외로 PDRN을 주사하고 6개월 넘게 지켜본 증례입니다. 한 사람의 기록이라 일반화할 수는 없습니다. 지금 제가 하는 방식은 해부학적 이해와 약의 작용 원리, 그리고 진료실에서 지켜본 경험을 바탕으로 한 판단이고, 그래서 환자마다 반응을 보면서 횟수와 간격을 조정합니다.

Kang KN, Kim TW, Koh JW, et al. Effect of transforaminal epidural polydeoxyribonucleotide injections on lumbosacral radiculopathy: A case report. Medicine (Baltimore). 2017;96(25):e7174.
두 의학을 함께 쓴다는 것
한의학의 언어는 오래 관찰한 경험의 기록이고, 의학의 언어는 그 경험을 구조와 기전으로 설명하려는 시도라고 생각합니다. 협척혈과 후지내측지가 같은 자리를 가리킨다는 건 어느 한쪽이 옳다는 증명이 아니라, 두 언어가 같은 몸을 보고 있다는 확인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저는 한쪽만 고르지 않습니다. 바늘 위치는 해부학과 영상으로 확인하고, 약은 기전과 근거를 따져 고르고, 치료 리듬은 침 치료처럼 자주, 조금씩 가져갑니다. 효과와 필요한 횟수는 사람마다 다르고, 맞은 날은 하루 이틀 묵직할 수 있습니다. 다리 힘이 빠지거나 대소변이 불편한 경우에는 이런 치료보다 정밀검사가 먼저입니다.
목록으로 ↑